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르반 빅토르 (문단 편집) === 2기 집권, 그리고 개헌 === 2006년 총선에서도 피데스는 득표율이 약상승하였음에도 사회당에게 패배하였으나, 이후 사회당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며 본격적으로 긴축정책에 들어가면서 증세와 공공요금 인상 등의 정책을 폈고, 덕택에 체제전환 이후로도 얻은게 별로 없다고 느끼는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반발여론이 일었다. [[카다르 야노시]]에 대한 평가가 급속도로 올라간것도 이때였다. 이 와중에 당시 주르차니 총리가 비공개적인 자리에서 "정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우리는 거짓말만 했다"는 발언을 한 게 유출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58751.html|#]]. [[T-34-76|T-34]] 문서에서 볼 수 있는 이 [[http://static.guim.co.uk/sys-images/Guardian/Pix/pictures/2006/10/23/hngrygttaa.gif|유명한 짤방]]이 이 당시의 사진이다. 그 이후로도 헝가리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강도높은 긴축을 지속했으나 2008년 상반기 피데스가 주도한 국민투표에서 대학의 부분적 유료화와 무상의료서비스의 부분적 유료화 조치를 철폐하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직후에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고, 이 무렵 여론조사에서 피데스의 지지율은 60%대를 넘나들게 되었다. 친서방 자유보수주의 성향이었던 오르반 빅토르의 정치성향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때가 사회당 2기 집권기였을때인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친서방자유주의 노선에서 극우성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2009년 연설에서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간에 엘리트들의 사상이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하면서 정치노선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입증했다.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당은 긴축대신 경제성장을 내세우는 공약을 통해서 기존 사회민주당 지지층을 대거 흡수하며 52.7%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웠고, 전체 의석 386석의 3분의 2를 넘는 263석을 확보하며 재집권하였다. 총리직 재취임 이후 오르반은 긴축을 요구하는 IMF의 지원을 거부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이후 특별세를 징수하는 등의 정책을 펴 2013년 구제금융 빚을 조기상환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66&aid=0000136357|#]]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오르반은 2012년 헌법을 개정해 기본권을 대폭 축소하고, "국가의 지적, 정신적 통일 수호"에 어긋나는 [[언론탄압|언론보도나 각종 시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거나, [[게리멘더링|여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개편]]한다거나 하는 내용의 신헌법을 통과시켰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10401072132071002|#]] 이와 동시에 미디어법이나 중앙은행법 등을 개정하면서 기본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자 EU는 헝가리 정부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도 하는 등[[http://www.ytn.co.kr/_ln/0104_201201180215109799|#]] EU와도 충돌을 빚었다. 오르반은 2014년 총선을 앞두고 "다국적 기업과 은행들, EU 관리들이 헝가리를 공격하려 한다", "탐욕한 저들이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EU와 외국 기업들을 비난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1932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